외국인의 한국 책 Different Point of View Chaeg July·August 2015 100 책 101 에 덩달아 기분도 좋아지죠 . 그럴 때마 다 한국에 대해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 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. Chaeg 문학 번역 일은 어떻게 시작 하게 되셨나요 ? 아그넬 문학 번역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. 그러나 인도에 서 한국문학 번역과 관련한 일은 별로 없거든요 . 처음엔 어쩔 수 없이 한국계 회사에 들어가 계약서를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. 보수는 꽤 괜찮았지만 오 랜 시간 동안 일을 하다 보니 제 인생을 갑과 을이 넘쳐나는 계획서에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. 다시 한 번 제대로 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도전해보자 ’ 는 마음이 들었고 , 한국문학 번역원의 정규 아카데미 과정을 신청했 어요 . 그 수업에서 은희경 작가님의 단 편 『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』 를 번역 했는데 운이 좋게도 제가 한 번역에 대 해서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지금 한국문 한국 문학에 날개를 달다 아그넬 조셉 Agnel Joseph 지만 인도의 말라얄람어는 한국어와 문 장구조가 거의 같아요 .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어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. 그 런데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어렵 더라고요 . 다양한 표현과 고급 어휘 같 은 것들은 정말 어려웠어요 . 지금도 계 속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한국어는 공부를 할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. Chaeg 한국을 직접 경험해보니 어떤 인상이던가요 ? 아그넬 어디를 가더라도 처음엔 낯설 고 불편함을 느끼듯이 , 저 역시 불편함 을 느꼈죠 . 하지만 한국에 대한 첫 인상 은 굉장히 좋았어요 . 잘 발달된 도시 환 경이라든지 , 친절한 한국 사람들 덕분인 것 같아요 . 예를 들면 향신료가 발달한 인도에서 자라서 매운 음식을 곧잘 먹는 데 식당에 들어가서 매운 음식을 시키면 식당 주인 분께서 ‘ 이거 너무 맵다 ’ ‘ 잘 못 먹을 것 같다 ’ 등 미리 걱정하고 배려 해주세요 . 한국인의 친절함이나 따뜻함 Chaeg 한국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? 아그넬 저희 삼촌이 인도의 네루대 학교 일본어과 교수예요 . 어렸을 때부 터 동양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 고 자랐죠 . 인도도 같은 동양권인데 다 른 점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. 그 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양권의 다른 나 라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. 대학교 입학 을 앞두고 전공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 하던 중 한국이란 나라를 처음 알게 됐 어요 .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은 생소했기 때문에 오 히려 제 호기심을 더 자극했던 것 같아 요 . 더불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인 만큼 앞으로 더욱 기회가 많을 것 같 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국어를 공부해보 기로 했어요 . Chaeg 처음 한국어를 접했을 때 어렵 지는 않았나요 ? 아그넬 영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반대 인도 뉴델리에서 온 청년 아그넬 조셉은 한국문학번역 원에서 일하는 유일한 외국인 직원이다. 2013년 한국문 학번역원에서 신인상과 코리아타임즈에서 주최한 현대 한국문학번역상을 휩쓴 그는 한국어를 정확하게 구사 한다. 평소에 매운 음식도 즐겨먹고 한국문화에 푹 빠져 있다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친근함 느껴진다. 그는 인터 뷰 내내 겸손함이 엿보이는 수줍은 모습이었다. 그러다 가 책 이야기만 나오면 그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였다. 그 런 그의 모습에서 문학청년으로 자라온 그의 진짜배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. 에디터: 박소정 사진: 세바스티안 슈티제 © Sebastian Schutyser 학번역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죠 . 외국인인데도 제가 한국문학번역 원에 채용된 이유는 아마도 인도인이 한 국 와서 한국문학을 번역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좀 생소해서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. ( 웃음) Chaeg 꿈꿔왔던 번역 일을 실제로 해보니 어떠셨나요 ? 아그넬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, 대학교 때 한국어를 전공하면 서 자연스럽게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. 처음에는 영어로 번역된 한국문 학을 찾아 읽고 그 다음에 다시 한국어 로 된 책들을 보게 됐는데 , 그때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죠 . 그래서 저는 번 역을 하고 싶었어요 . 내가 좋아하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. 사 실 처음에 번역에 대해서 잘 몰랐을 때 는 막연하게 한국어만 잘하면 된다고 단 순하게 생각했어요 .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폭넓 게 알아야 하고 ,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재주도 필요하더라고요 . 저는 평소에 영 어로 된 책들도 유심히 보면서 표현 같 은 것을 공부해요 . 그게 꽤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죠 . 번역이라는 게 단순히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바꾸 는 것이 아니고 , 언어의 여러 가지 요소 와 문화 등을 복합적으로 생각해서 풀어 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. 그게 가장 어 려웠던 것 같아요 . Chaeg 지금까지 번역했던 작품 중 가 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요 ? 아그넬 하성란 작가의 『 오후 , 가로지 다 』 가 기억에 남아요 . 그 작품으로 한국 문학번역원 신인상을 수상했어요 . 번역 작업을 좀 늦게 시작해서 마감 직전까지 편집하느라 꽤 애를 먹은 작품이었죠 . 특히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무척 고민했어요 . ‘ 오후 ’ 가 어떤 하루의 오후를 의미하는지 , 또 ‘ 가로지르다 ’ 라는 행위 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등 , 제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번역이 달라지니까 요 . 그때 우연히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관한 이야기와 심리학자 카를 융의 말 에서 ‘ 인생의 오후 ’ 라는 영감을 얻게 됐 어요 . 결국 제목을 ‘ Cutting Across the Afternoon of Life ’ 로 번역했어요 . 이래 저래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인데 , 생각지 도 못하게 번역원에서 신인상도 수상하 게 돼서 더 뿌듯하고 좋았어요 . Chaeg 번역을 하면서 정말 매력적이 라고 느꼈던 표현들이 있으신가요 ? 아그넬 최근에 번역한 박민규 작가의 단편소설 『 낮잠 』 은 문체가 굉장히 서정 적이고 감성적이어서 인상 깊었어요 . 특 히 한자를 많이 사용해서 문장을 만드 는 박민규 작가만의 특유의 문체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어요 . 예를 들면 “ 숲이라 는 벼루를 다 갈아버린 듯 창 밖은 오로 지 묵( 墨) 하고 묵( 默) 하다 . ” 는 표현은 음 은 같지만 , ‘ 묵 ’ 이란 표현이 각각 ‘ 어둡다 ’ ‘ 조용하다 ’ 는 뜻을 지니고 있잖아요 . 그 런 표현들이 재미있고 , 기억에 오래 남 는 것 같아요 . Chaeg 번역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 엇인가요 ? 아그넬 한국어 문장은 완벽히 이해 를 했는데 , 이 문장의 의미를 그대로 살 려 영어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가장 어려운 순간인 것 같아요 . 한국어 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에는 누구에게 물 어보거나 찾아보면 되는데 , 이것을 영어 로 표현해내는 건 저의 몫이니까요 . 예 를 들면 『 낮잠 』 에서 ‘ 정동필 ’ 이라는 남자 가 나오는데 , 이 사람의 별명이 ‘ 똥피리 ’ 예요 . 그런데 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옮 기면 재미가 없어져요 . 그래서 어떻게 해석하여 옮기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똥 (Turd) 과 약물(Pill) 을 합쳐서 ‘ Turd pill ’ 로 번역했죠 . 이 합성어가 ‘ 똥피리 ’ 가 주 는 이미지를 가장 잘 전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. 번역을 하다 보면 책 상에 앉아서 계속 고민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거나 집에 가서 잠을 자려고 누 웠을 때 번뜩 좋은 표현이 생각나는 경 우가 많아요 . 이런 순간이 고통스러우면 서도 가장 재밌는 순간이에요 . Chaeg 작가 이상을 좋아한다고 들었 는데 ,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? 아그넬 이상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자기 주변 이야기 위주로 쓰고 있고 , 또 글을 너무 어렵게 써서 사실 이해가 잘 안 갔어요 . 보통 작가들과 달리 독자들 을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을 위해 썼다는 느낌이 강해서 낯설었던 것 같아요 . 그러던 중 월터 루(Walter K. Lew ) 씨가 번역한 『 날개 』 와 다른 사람이 번역한 『 날개 』 를 비교하는 수업을 듣게 됐어요 . 월터 씨의 번역본에서의 『 날개 』 는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던 문체나 문장 이 영어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었죠 . 그제서야 제대로 이상의 작품 세계를 이 해할 수 있게 되었죠 . ‘ 아 , 이렇게 표현해 낼 수도 있구나 ’ 하고 새삼 번역의 대단함 도 느꼈고요 . Chaeg 한국문학의 장점이 무엇이라 고 생각하시나요 ? 아그넬 저는 한국문학계에서 단편소 설이 활발하게 나오는 구조가 큰 장점이 라고 생각해요 . 개인적으로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, 여러 작품과 작가를 만날 수 있어서 단편소설을 좋아해요 . 최근에는 황정은 작가의 단편 『 상류의 맹금류 』 를 읽었는데 문체도 단순명료하고 상황의 전개도 빨라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. 서양 에서는 작가들이 장편 위주로 작품을 내 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문단에 등단 할 때부터 단편으로 데뷔를 하죠 . 이후 에 장편이 나오긴 하지만 단편도 꾸준하 게 발표해서 다양한 소설을 즐길 수 있 어요 . 그런 점이 좋은 것 같아요 . Chaeg 번역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 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? 아그넬 어렸을 때 탐구 소설이나 해학 미가 돋보이는 『 캐치22』 나 『 호밀밭의 파 수꾼 』 등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 많 았어요 .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랫 동안 책과 가까이 지내오면서 상상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. 아인슈 타인의 “ 논리는 당신을 A 에서 B 로 이끌 고 가지만 상상은 당신을 어디든 데려갈 것이다 . ” 라는 말은 저를 깨어 있는 상태 로 만들어줘요 . 저는 그 말을 항상 기억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. 일상생활은 물 론 번역을 할 때도 모든 것을 논리로 설 명하고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상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거든요 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