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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연(宛然)은 아주 뚜렷하다 , 흠이 없이 완전하다 를 뜻한다. 날씨가 계절의 뚜렷한 특성을 보일 때 이 단어를 주로 쓰는데,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나무 들이 빨갛고 노란 단풍잎을 하나 둘 매달기 시작하는 요즘이야 말로 완연한 가을 이라 할 수 있겠다.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. 지난 16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제11차 2020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소재 작은사슴이오름에서 시 작, 큰사슴이오름~남영마로길~새끼오름~잣 성길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진행됐다. 특히 이 번 에코투어는 억새가 장관을 이룰 때 이뤄 져 완연한 가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었다. 다 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산행에 나섰다. 첫번째 행선지인 작은사슴이오름 입구는 평탄한 송이길과 잔디길로 이뤄져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몸을 풀어주는 워밍업 역할을 했다. 이 때부터 정석비행장에서 날아오른 연 습용 경비행기가 위잉 소리를 내며 주변 상 공을 날았는데, 이 소리는 투어가 끝날 때까 지 모기처럼 따라다녔다. 작은사슴이오름 중턱쯤 오르니 수 십개의 오름 군락과 한라산이 펼쳐졌다. 맨 뒤에 가 장 큰 한라산이 버티고 서 있으니, 앞에 크고 작은 오름들은 여왕을 지키는 호위무사 럼 보였다. 조금 더 오르니 큰사슴이오름이 보였는데, 능선에는 만개한 억새가 바람에 일 렁이고 있었다. 억새가 일렁이는 큰사슴이오름의 능선은 생각보다 가팔랐다. 하지만 손처럼 흔들리는 억새와 새하얀 물매화를 보는 낙으로, 또 정 상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를 떠올리며 힘을 낸다. 정상에 오르니 제주 동남부지역 오름 군락 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. 가장 뒤에 있는 성산일출봉은 육지 위에 있음에도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고, 반대로 투탕카멘의 관처럼 길쭉한 지귀도는 육지에 있는 것 같 았다. 큰사슴이오름 아래 거대한 풍차들이 꽂혀 있는 풍력단지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. 오름 파노라마 감상을 마치고 남영마로 길을 이용해 마지막 오름인 새끼오름으로 향 했다. 그러나 마로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 아 키 만큼 자란 풀들을 헤치느라 애를 먹었 다. 이번 투어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마로 길이었는데, 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. 실망은 잠시였다. 마로길을 헤친 끝에 펼 쳐진 탁 트인 초지가 시야를 소형 텔레비전 에서 영화관 스크린으로 확대해준 것이다. 초 지 주변으로는 새끼오름과 따라비오름 등 여 러 오름들이 둘러쌓여 있었는데, 말이 자유롭 게 달리는 몽골 초원 같았다. 초지를 지나 새끼오름 아래 있는 편백나무 숲에서 점심을 먹었는데, 탐방객들이 버린 다 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슬렸다. 수거를 하 고 싶었지만, 인원이 적어 우리가 배출한 쓰 레기를 처리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. 두둑히 배를 채운 뒤 새끼오름을 올랐다. 다소 경사가 있었지만, 빽빽히 들어선 나무가 지팡이 역할을 해주면서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. 그러나 정상에도 나무가 빽빽해 주변 풍광을 볼 수 없었다. 출발지로 돌아가는 길은 잣성길 을 이용 했다. 잣성은 제주 중산간 목초지의 경계 구 분을 위해 축조된 돌담을 뜻하는데, 가시리의 잣성길은 약 6㎞로 제주 최대 규모다. 억새가 가득한 잣성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대록산 주차장에 도착 했다. 함께 탐방한 이들의 얼굴에는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알게 됐다 는 미소가 떠 있었 다. 차를 타려는데 항공복을 입은 사람 몇명 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. 투어 내내 귀를 때리 던 연습용 경비행기를 조종한 예비 파일럿 으로 보였는데, 그들의 얼굴에도 우리와 비슷 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. 글=송은범기자 사진=강희만기자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7 대록산에서 바라본 억새와 오름의 풍경 속에 가을이 내려앉아 있다. 2020 제주섬 로벌 코투어

2020년10월28일수요일pdf.ihalla.com/sectionpdf/20201028-85290.pdf · 2 days ago · 완연(宛然)은 아주뚜렷하다, 흠이없이 완전하다를뜻한다.날씨가계절의뚜렷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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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연(宛然)은 아주 뚜렷하다 , 흠이 없이

완전하다 를 뜻한다. 날씨가 계절의 뚜렷한

특성을 보일 때 이 단어를 주로 쓰는데, 구름

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나무

들이 빨갛고 노란 단풍잎을 하나 둘 매달기

시작하는 요즘이야 말로 완연한 가을 이라

할 수 있겠다.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

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.

지난 16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제11차

2020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는 서귀포시

표선면 가시리 소재 작은사슴이오름에서 시

작, 큰사슴이오름~남영마로길~새끼오름~잣

성길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진행됐다. 특히 이

번 에코투어는 억새가 장관을 이룰 때 이뤄

져 완연한 가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었다. 다

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최소한의

인원으로만 산행에 나섰다.

첫번째 행선지인 작은사슴이오름 입구는

평탄한 송이길과 잔디길로 이뤄져 본격적인

산행에 앞서 몸을 풀어주는 워밍업 역할을

했다. 이 때부터 정석비행장에서 날아오른 연

습용 경비행기가 위잉 소리를 내며 주변 상

공을 날았는데, 이 소리는 투어가 끝날 때까

지 모기처럼 따라다녔다.

작은사슴이오름 중턱쯤 오르니 수 십개의

오름 군락과 한라산이 펼쳐졌다. 맨 뒤에 가

장 큰 한라산이 버티고 서 있으니, 앞에 크고

작은 오름들은 여왕을 지키는 호위무사 처

럼 보였다. 조금 더 오르니 큰사슴이오름이

보였는데, 능선에는 만개한 억새가 바람에 일

렁이고 있었다.

억새가 일렁이는 큰사슴이오름의 능선은

생각보다 가팔랐다. 하지만 손처럼 흔들리는

억새와 새하얀 물매화를 보는 낙으로, 또 정

상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를 떠올리며 힘을

낸다.

정상에 오르니 제주 동남부지역 오름 군락

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. 가장 뒤에 있는

성산일출봉은 육지 위에 있음에도 바다 위에

떠있는 것처럼 보였고, 반대로 투탕카멘의

관처럼 길쭉한 지귀도는 육지에 있는 것 같

았다. 큰사슴이오름 아래 거대한 풍차들이

꽂혀 있는 풍력단지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

주었다.

오름 파노라마 감상을 마치고 남영마로

길을 이용해 마지막 오름인 새끼오름으로 향

했다. 그러나 마로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

아 키 만큼 자란 풀들을 헤치느라 애를 먹었

다. 이번 투어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마로

길이었는데, 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니 기대가

실망으로 바뀌었다.

실망은 잠시였다. 마로길을 헤친 끝에 펼

쳐진 탁 트인 초지가 시야를 소형 텔레비전

에서 영화관 스크린으로 확대해준 것이다. 초

지 주변으로는 새끼오름과 따라비오름 등 여

러 오름들이 둘러쌓여 있었는데, 말이 자유롭

게 달리는 몽골 초원 같았다.

초지를 지나 새끼오름 아래 있는 편백나무

숲에서 점심을 먹었는데, 탐방객들이 버린 다

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슬렸다. 수거를 하

고 싶었지만, 인원이 적어 우리가 배출한 쓰

레기를 처리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.

두둑히 배를 채운 뒤 새끼오름을 올랐다.

다소 경사가 있었지만, 빽빽히 들어선 나무가

지팡이 역할을 해주면서 수월하게 오를 수

있었다. 그러나 정상에도 나무가 빽빽해 주변

풍광을 볼 수 없었다.

출발지로 돌아가는 길은 잣성길 을 이용

했다. 잣성은 제주 중산간 목초지의 경계 구

분을 위해 축조된 돌담을 뜻하는데, 가시리의

잣성길은 약 6㎞로 제주 최대 규모다.

억새가 가득한 잣성길을 걷다보니 어느새

출발지이자 종착지인 대록산 주차장에 도착

했다. 함께 탐방한 이들의 얼굴에는 비로소

가을이 왔음을 알게 됐다 는 미소가 떠 있었

다. 차를 타려는데 항공복을 입은 사람 몇명

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. 투어 내내 귀를 때리

던 연습용 경비행기를 조종한 예비 파일럿

으로 보였는데, 그들의 얼굴에도 우리와 비슷

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.

글=송은범기자 사진=강희만기자

기 획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7

대록산에서 바라본 억새와 오름의 풍경 속에 가을이 내려앉아 있다.

2020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